시사인 594호(양꼬치 성지엔 프랜차이즈가 없다) 에 실린 글의 편집 전 버전이다. 편집과정에서 훨씬 더 매끈하게, 잘 읽히고 주제를 명료하게 드러낼 수 있도록 다듬어주셨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그런 게 있지 않나. 거친 느낌의 초기버전에 애착이 가는. 그런 관점에서 올려두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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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 꽤 많은 사람들은 조선족 혹은 중국사람을 이야기할 것이고, 누군가는 지하철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는 긴 에스컬레이터를, 그리고 그 길을 올라갈 때 바깥으로 얼핏 보이는 원색의 직업소개소 간판을, 아니면 몇몇 영화에서 즐겨 보여주던 간자체로 된 강렬한 네온사인들 아래에서 허름한 복장의 사람들이 어딘가로 몰려가는 풍경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양꼬치 – 와 함께 등장하는 특정 브랜드의 맥주를 이야기할수도, 아마도 ‘힙한’ 사람들이라면 마라탕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몇 있겠다. 딱 거기까지다. 솔직히 이야기하자. 우리는 대림동을 잘 모른다(다른 동네라고 잘 아는건 아니지만)
하다못해 대림동에 밥이라도 먹으러 가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는 대충 동네에 뭐가 있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게 아닌가. 그러니까 식당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밥은 중요하니까.
2019년 1월 기준으로, 서울 내에서 운영중인 음식점 숫자는 15만개를 약간 넘는다. 전체 음식점 중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될까? 음식점의 상호에, 공정거래위원회 가맹사업시스템에 등록된 영업표지(브랜드)가 포함된 음식점(일반음식점, 까페(휴게음식점), 빵집(제과)을 포함)의 개수는 약 1만개 정도로, 전체의 6%를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의외로 체감하는 것 보다 적은 숫자다. 이렇게 ‘적은’ 프랜차이즈가 출점기준을 둘 때에는, 브랜드의 규모나 정체성에 따라 나름의 전략을 세워 들어간다. 이를테면 전 스타벅스가 새로운 나라/도시에 진입할 때 중심업무지구에 초기 출점을 집중한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프랜차이즈는 일반적으로 유동인구와 주변 사업체, 거주인구의 규모를 따진다. 아주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없는 곳을 찾으려 들진 않는 것이다. 서울에 존재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점들의 지도를 그려보면, 자연스럽게 유동인구가 집중된 주요 지하철역 주변에 프랜차이즈 밀집지가 나타나게 된다.
번화가인 대림동에는 프랜차이즈가 의외로 드물다
그런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대림동 주변을 살펴보면 뚜렷한 공백지가 보인다. 서울 서남부에서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에게, 대림역에 사람이 없냐는 묻는다면 코웃음을 칠게 뻔할 정도로 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지도에는 밀집지가 보이질 않는다. 이를 프랜차이즈가 아닌 기존의 음식점 밀도지도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 번화가가 아닌 것도 아니며, 유동인구가 없지도 않고, 기존에 음식점이 없는 상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진입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유에는 여러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직관적으로는 ‘익숙함’에 대한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사람들은 잘 모르는 곳에는 굳이 가게를 내려고 하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림동을 이미 일반적이지 않은 곳, 낯선 곳으로 받아들이고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어떤 이유에서건(결과적으로) 프랜차이즈가 들어오지 않게 된 동네인 대림동에서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대림동 : 가장 가까운 타지(他地)
서울시 열린데이터광장에 공개된 음식점 데이터의 제일 끝자락에는 업장 대표의 내외국인 여부와 국적이 등록되어 있다. 15만개의 음식점 중 외국 국적의 거주민이 대표로 등록된 업체의 수는 약 1,800개로, 전체의 1%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1%를 국적별로 다시 나눠보면 중국의 비율이 68%로 가장 높고, 미국/캐나다가 13%, 대만, 일본이 각 4% 정도를 차지한다. 그 1%의 음식점들은 어디에 몰려있을까? 지도를 통해 밀집도를 살펴보면, 그 결과가 시시하리만치 뚜렷하게 나타난다.
왼쪽은 서울 전체의 음식점 밀집지역이다. 종로-명동, 합정-홍대-신촌, 강남대로-테헤란로 등 서울의 대표적인 번화가와 점점이 각 지역의 중심지들을 포괄한다. 오른쪽 지도는 외국인이 대표자인 음식점들이 밀집한 지역을 보여준다. 건대입구에 약간의 흔적이 보이지만, 압도적인 밀집을 보이는 지역은 그냥 대림동이다.
도시에는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다
도시정책의 방향성에서 ‘다양성’ 이라는 가치가 등장한지는 꽤 오래 되었지만, 그 다양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는지, 또 그것을 어떻게 확보하고, 이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을지로의 예를 들어보자. 매우 특수한 종류의 제조업과 경공업이 클러스터를 이루고, 도심 접근성을 바탕으로 그 클러스터를 배후에 둔 예술가들의 작업실이 노포들과 공존하는 공간인 을지로는 공공에서 애를 써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도시의 다양성이 이미 확보된 공간이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공간을 재설계하고자 한다면, 단순히 경관관점이 아니라 산업과 문화관점에서의 고려 역시 필요하다. 그 공간을 점유하는 시민의 삶이 공간과 강하게 이어져 있으며, 그 영향력은 누구도 쉽게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나고 나서야 명백하게 보이지만, 대체 디자이너들이 을지로에 스튜디오를 차리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도시 전체의 스케일로 보면, 이미 대림동은 서울의 다양성에 기여하는 공간이다. 외국인(중국인)이 운영하는 유일한 클러스터가 서울의 반경 안에, 그것도 수도권 전철역중 상위 10% 수준의 승하차인구를 가진 지역에 존재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잠재성을 가진다. 우리는 대림동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내가 말할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대림동의 양꼬치가 매우 맛있다는 것이다(나는 훠궈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단편적인 감상을 넘어서, 누군가는 이곳을 기회의 공간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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